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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지도 검색, 스카이뷰~^^

맛짱님 2009. 2. 4. 23:57

다음 지도 검색 '스카이뷰'로 검색하여 고향을 다녀 온 기사들이 블로거 뉴스에 눈에 띈다.
아이를 불러 스카이뷰가 모니?하고 물어 보았더니 오히려 반문을 한다.

" 엄마, 스카이뷰가 뭐야?"


 



맛짱이 이벤트 정보에 좀 어두운 편인지라.. 다음 검색창에 검색을 하여 보았더니..
스카이뷰 지도검색주소와 관련기사가 쫘아~~ㄱ




지도검색 다음지도 스카이뷰로 들어 갔더니.. 정말로 생생한지도가 눈에 들어 왔다.
아이가 똑똑한 지도검색을 보면서 첫 화면에 탄성을~~~


"와~~ 엄마 이거..구글어스보다 더 좋다"며 소리를 지른다.




아이가 신이나서 집을 검색하여 찾아본다.

엄마 학교 뒤에 .. 저골목..우리집이 보여~~~신이 났다.
농담을 하느라.. 엄마는 모하고 있니?하였더니..
힐끔쳐다보고는 키득거린다.


엄마 내친 김에 주말(지난 주말)에 가기로한 '충주 탄금대'도 찾아보자~~

 

 

 

충청북도 충주시에 들어갔더니... 탄금대 주변 도로와 탄금대공원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연두색 동그라미 안에 위치한 곳이 탄금대 공원

다음 지도 검색 스카이뷰를 보고 간 덕분에..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탄금대는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위치하고 있다.


▲ 입구에 서 있는 탄금대 유래비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 신라 진흥왕 시대에 가야국과 제일가는악성 우륵이 가야국의 명망을 예견하고
우거지를 찾아온 것이 충주였는데 이곳 대문산의 아름다운 풍치에 감동되어 제자 법지 계고 만덕에세
가무 음곡을 가르치며 가야금을 탄주하니 그 미묘한 음악소리에 이끌려 모여든 사람들이 부근에 이루었다고 하며
이러한 연유로 「彈琴臺」( 탄금대)라 호칭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국악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수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 8,000여기를 이르고 이곳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적의 무리를 맞아
사력을 다하여 선전분투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천추의 한을 품은 채 장열하게 최후를 마친 전적지이기도 하다.



주차장에 있는 탄금대공원 안내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는 길목.. 서울과는 달리 눈이 많이 내렸다.

 

▲ 공원에 들어서기전에 있는 악성 우륵선생추모비     

이비는 귀부와 이수의 형태를 갖춘 비이다. 화강암의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폭 140cm, 길이220cm,
높이65cm의 귀부대좌를 화강암으로 만들고 육각형의 구갑(龜甲)을 새기고 연화문 받침 위에 비공(碑孔)받침을
만들었다. 비석은 오석으로 폭 85cm, 두께47cm, 높이200cm의 크기로 전면에는 예서체로 '악성우륵선생추모비'를
글자크기 26cm의 크기로 새겼다. 뒷면에는 작은 글자로 그내용을 기록하였다. 이수는 폭 100cm, 두께67cm,
높이75cm의 화강암으로 용을 양각하였으나 조각이 치졸하다. 단금대 입구에서 산으로 올라가 문화관 앞 주자광장
입구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을 전부 개재한다.



▲ ‘탄금대 사연’ 노래비

충북 충주를 대표하는 향토가요로 37년 동안 시민의 사랑을 받아 온 ‘탄금대 사연’ 노래비가 29일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 야외음악당 앞에 세워졌다. 국제로타리 3740지구 3지역(충주) 소속 7개 로타리클럽은 올해 국제로타리
창립 100주년을 맞아 도비와 자부담 등 3600여만원을 마련, 노래비 건립을 추진해왔다.

2005. 6. 29(수)14:00 제막식을 가졌다.〈사진〉 제막식에는 로타리클럽 회원과 가요계, 국악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
탄금대 사연’은 1968년 당시 KBS 충주방송국에 근무하던 이병환씨가 가사를 쓰고 향토작곡가 백봉씨가 곡을 붙인 노래.
충주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인 탄금대를 소재로 한 노래여서 40년 가까이 충주의 대표적인 향토가요로 애창돼 오고 있다.



▲ 忠魂塔(충혼탑)

우리나라가 오늘의 국운을 이어온 이면에는 겨레의 생명을 계승시키느라 대신해서 인간으로서 지존으로 하는
자기생명을 희생시킨 애국충청이 뒷받침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뜻을 이념으로 해온
충주상이군부용사분회와 대한제대장병보도분회에서는 호국영령들의 위한 충혼탑을 건립하게 하여 그 뜻을 기리고
건립하기로 결의하고 건립장소를 모색하다가 선열들의 피가 맺힌 전적지인 탄금대에다 건립하게 된 것이다.


▲ 감자꽃 노래비

감자꽃 노래비는 135×180cm의 지대석과 그위에 120×162cm의 2중 지대석 위에 높이 360cm 폭60cm의 반원통형의
화강암을 세우고 지름 110cm의 반구형에 감자꽃을 새겨 돌기둥의 25cm 상단에 배치하고 감자꽃 조각 위에
45×60cm의 검은돌(鳥石)을 붙이고 거기에 글자를 새겼으며, 글자파 위 10cm 상단에 10×45cm의 오석에
노래비라는 제목을 음각하였다. 노래비 옆면에 30×35cm의 오석에 부착하여 여기에 감자꽃 노래비의
설립에 관한여 기록하였다. 탄금대의 동쪽 충혼탑 옆에 위치하고 있다.

 

* 노래비(비문(碑文)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감자



임진왜란 때 수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 8,000여기를 이르고 이곳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적의 무리를 맞아
사력을 다하여 선전분투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천추의 한을 품은 채 장열하게 최후를 마친 전적지이기도 하다. 

 

 

▲ 탄금정(彈琴亭)

과거의 탄금대 육각정이 새로 이층 콘크리트 건축으로 단장된 후 이름까지 탄금정으로 바뀌었다.

탄금정이란 정자는 2층으로 누각형태의 정자다. 탄금대 열두대 가는 길목 전망이 좋은 곳에 서 있다.
탄금정의 1층은 2단의 기단을 만들고 한 변의 길이가 7m의 정방형 위에 한 변의 길이가 80cm이 정방형의
주초석(柱礎石)을 놓고 그 이에 사방 50cm크기의 사각기둥을 각각 280cm 거리에 4개를 놓아 2층 누각을 지탱하고 있으며
폭 120cm의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만들었다. 2층은 720cm를 한 변의 길이로 하는 정방형으로 가운데
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가에는 난간을 둘러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으며 네 기둥사이에는 지름 60cm의 원형콘크리트

기둥을 세워 초익공(初翼工) 계통의 공포를 구성하였다.

이 정자의 내력을 보면 본래 천운정(天雲停)으로 1903년(광무7년) 충청북도 관찰사 김양규씨가 자기조부가
충주목사로 재임당시 지금의 교육청자리에 있던 연못(당시는 상연당이라고 했다)가운데에 석가산을 쌓고 그위에다
육각정을 세우고 천운정이라 이름짓고 매년 7-8월이 되면 수령과 유생들이 모여 시를 짓고 즐기던 곳이었다.

광무10년(1906)에 충주공립보통학교(현교현초등학교)를 이곳에 건축하고 운동장으로 사용키 위해 상연정을 메우게 되며
육각정은 사직산으로 옮기고 임시 석영으로 사용하다가 , 1955년 당시 충주읍장이었던 박승두가 이 정자가 사직산에
이건되어 있던 것을 탄금대 열두대 위로 옮긴 것이다. 목조로 된 이 정자는 낡아서 1976년 6월 이 자리에 현재의
탄금정을 세우고 6각형이던 천운정은 1977년 호암지 3번 국도 옆 동산에 콘크리트 건물로 6각정 정자가 다시 지어졌다.

탄금정 언덕아래로는 신립장군을 모신 사당과 우륵의 동상이 있엇지만.,,..
눈이 너무 많이 와.. 미끄러워 내려 갈 수 가 없어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렇게 스카이뷰를 보고 다녀 온 탄금정 ..
탄금정을 다녀와서 아이가 하는말이 "엄마 탄금에 안내도에 있는 사진하고 정말 똑같다.. 그치~!"

똑똑한 다음 지도 스카이뷰, 앞으로 종종 이용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